CEO의 뇌손상 - 경험담

CEO가 되면 뇌가 손상을 입는다 : 연구 결과

개인적으로 CEO들만의 행동의 특징을 발견한 사례

10여년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내가 동생과 조문객들을 맞고 있을 때였다.
방명록에 이름을 작성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인펜의 뚜껑을 열고 이름을 쓰고 싸인펜 뚜껑을 닫아 방명록 위에 안 굴러가게 놓아두고 절을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첫 날 몇몇 사람들이 이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수행원이 따라오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은 싸인펜의 뚜껑을 열고 이름을 쓰고 싸인펜을 아무대나 놓고 절을 하러 들어갔다의 절차를 밟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아버지께서 소개 시켜 주는데 보니, 어디어디 사장이나 회장이더라... 흠...

그래서, 둘째날에도 계속 관찰을 해 봤더니 싸인펜 뚜껑을 닫지 않고 버려두는 사람은 꼭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저녁에 평범한 옷차림에 수행원도 없는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왔는데, 아니... 싸인펜 뚜껑을 닫지 않고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나와 내 동생은 '오~ 일반인 중에서 뚜껑 안닫는 사람이 처음 나왔네~'하고 있었는데,
절을 마치고, 아버지께서 함께 나오시더니 소개를 시켜주시는데, 
역시!!!
아버지 다니던 회사의 2세 사장이었던 것이다.

아~ 옷은 평범하게 입어도 행동은 그쪽이구나!!!


by JakeBlues | 2017/08/10 12:55 | 과학이라꼬? | 트랙백 | 덧글(0)

알파고 vs 프로기사 치수

커제와 알파고의 대국 이후에 알파고와 프로기사 간의 적정한 치수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가고 있다. 덧붙여, 돌파고와 현재 알파고의 치수 3점에 대한 얘기도 화제가 되고 있다.

알파고와 프로기사 간의 적정한 치수에 대해 프로기사들은 약 2~3점내외를 얘기하는 듯하고, 일반인들은 3~8점 치수를 얘기하는것 같은데, 왜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바둑실력을 알려주는 실존하는 자료는 승률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승률과 바둑실력을 동일시하여 인지한다. 우리에겐 이창호9단의 전성기 승률 80%가 그의 당시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만일, 승률이 바둑실력의 함수라면,바둑실력은 이 함수의 역함수를 사용하여 승률로부터 바둑실력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바둑레이팅 점수는 베이지안적인 접근방식을 사용하여 이 함수 관계를 경험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기풍이나 그날 그날의 심리상태, 몸상태, 날씨 등의 바둑 외적인 요인을 모두 제거한 가장 단순화시킨모형을 만들어도, 승률은 바둑실력만의 함수가 아니다. 승률이란일종의 확률이고, 확률로 표현되는 것은 최소한 평균값과 표준편차라는 요소를 필요로 한다. (확률분포가 정규분포가 아니라면 추가적인 파라미터가 필요하지만 가장 간략한 모형으로 정규분포를 가정하자.) 이 때, 평균값이 바둑실력에 해당하는 값이 된다. , 승률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바둑실력 외에 바둑실력의 편차값을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바둑실력을 얘기할 때, 혹은 고레이팅 점수를 얘기할 때, 왜 아무도 편차값을 얘기하지 않았던것일까?

그 것은 사람마다 바둑실력의 편차값은 비슷한 값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안정적인 바둑을 두는 기사도 있고, 하위 랭커에게 종종 지는 기사도있다. 이러한 편차에 차이가 난다고 해도, 불안정적인 기사의편차가 안정적인 기사의 편차에 비해 수배~수십배 크다라는 수준은 아니다. 단지 차이가 많이 나도 수십% 크다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바둑실력을 측정하는 방식(고레이팅점수)은 모든 대국에 있어서 동일한 편차를 가정해서 실력을측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가상의 고레이팅 시스템을 가정해 보자. 고레이팅 점수가 3000점인기사 A3500점인 기사 B가 바둑을 둔다고 할 때, AB의고레이팅 점수로 환산한 편차가 모두 200점이라면, 두 기사사이의 평균값 차이 = 500, 상대적인 편차 = sqrt(200^2+ 200^2) = 283, 이므로 AB를 이길 확률 = normsdist(-500/283) = 4% 정도가나온다. 이 경우 고레이팅 시스템은 BA를 이겨도 96% 확률에 따른 것이므로, 추가적인 점수는 거의 없게 된다.

반면, A기사의 점수가 3300점이었다면, AB를 이길 확률 =normsdist(-200/283) = 24% 가 되고, BA를 이길 경우 76% 확률에 따른 것이므로, 좀 더 많은 점수를 얻게 된다.

이처럼 고레이팅 시스템은 일정한 표준편차를 가정한 실력의 분포를 가정하여 승률=f(실력, 고정된 표준편차)을 계산한다. 이때, 실력의 확률분포는 정규분포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


실제 ELO rating 시스템을 보면, 승률은 1-1/(exp((R_B-R_A)/a) + 1) 의 함수를사용한다. 이 함수는 정규분포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누적정규분포와비슷한 형태를 가진 함수이다. R_A = R_B (ABrating점수가 같은 경우)에는 승률은 50%가 되고, R_A >> R_B 면 승률은 1, R_A << R_B 면 승률은 0으로 수렴함다. 이 때, a라는상수값은 위에서 설명한 고정된 표준편차의 역할을 한다. 한가지, /단에 따라 a를 다르게 주지만동일한 프로기사 레벨에서는 동일한 값을 사용하므로 고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현재의 고레이팅 시스템의 경우 모든 대국자는 동일한 표준편차를가진다는 가정하에 점수를 메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이가정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ELO rating 시스템을보면, 승률은 rating 점수차이뿐 아니라, a값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a값이 1/2로작아졌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실제로는 rating점수차이가 2배 커진 것으로 잘 못 판단하게 된다. (, (R_B-R_A)/(a/2) = (2*(R_B-R_A))/a )

작년에 이세돌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배포된 자료를 보면, 인간 기사와 알파고의 레이팅 점수를 비교한그래프가 있다. 그 그래프에는 점수뿐 아니라 표준편차도 표시되어 있는데, 알파고의 표준편차가 인간 기사의 표준편차보다 매우 작음을 볼 수 있었다. (정확한수치는 알 수 없었지만)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인간의 실력의 표준편차가 200이라고 가정할때, 알파고 실력의 표준편차가 20이라면, 둘 사이의 상대적 편차 = sqrt(200^2 + 20^2) = 201 이되어, 인간 대 인간의 경우(283)에 비해 약 30% 작은 편차값이 적용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알파고와 알파고 사이의경우에는 sqrt(20^2 + 20^2) = 28.3으로 1/10의편차값이 감소한다.

만일, 알파고의 실력의 편차가 인간의 편차보다 1/10이라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고정된 편차를가정한 고레이팅 시스템에서점수차이는 10배로 뻥튀기 된다.


일단, 현재 나는 발표된 알파고의 고레이팅 점수를 계산할 때 편차값(혹은 ELO 시스템의 a)을조정하여 계산한 것인지 알 지 못한다만일 고정된 편차값을 적용했다면, 알파고의 높은 레이팅 점수는 단순히실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기 때문이 아니라 알파고 실력의 편차가 작은 것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알파고 버전 별 승률이 90%를 넘는 차이를 보인다고 할 때도, 알파고의 편차를 고려해서 받아드릴 필요가 있다. , 인간 사이의 승률이 90% 차이가 나려면 매우 큰 실력차이(, 표준편차보다 큰 평균값 차이)가나야 가능하지만, 알파고의 경우 표준편차가 작기 떄문에 비교적 작은 실력차이에도 90% 승률을 만들 수 있다.


결론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바둑의 승률은 단순히 실력에 의해서만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실력의 편차도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는 인간끼리의 대국만이 고려되었기 때문에, 편차는 고정된 값으로 가정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편차라는 요소를 잊어보리고 승률을 따졌다. 하지만, 알파고의 실력의 편차는 인간에 비해 매우 작기 떄문에, 알파고의 승률을 따질 떄는 이 점을 고려해야만 알파고의 실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

비록 최신 버전의 알파고가 이전 버전의 알파고에 비해 매우 높은 승률을 유지하고, 어마어마한 레이팅 점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 것은 인간의 실력의편차를 알파고에 그대로 적용하여 느끼는 감각일 뿐이며, 실제 알파고의 실력은 승률이나 점수로 느끼는것보다는 작은 차이를 보일 것(편차가 작으므로)으로 예상할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프로기사들이생각하는 2~3점 치수가 실제 실력차이에 더 가까운 값이 아닐까 생각한다.

by JakeBlues | 2017/06/01 19:14 | 과학이라꼬? | 트랙백 | 덧글(0)

창의력 - 교육의 문제일까?


http://newidea.egloos.com/2177935

20여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오래 전부터 나오는 얘기가 한국인의 창의력 부족이다.
그래서, 창의력대장이니 하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이 한 때 유행하기도 했고...

그런데, 창의력이 교육의 문제일까?  
한국교육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일까?
(나는 한국교육의 문제는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통하는 법이란 단순히 대화하는 법이 아니라 글쓰기, 말하기, 연설하기, 듣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함께 일하기"를 포함하는 영역이다.) 이 주제는 따로 하기로 하고, 창의력에 집중해서 얘기해 보자.

과연 한국인은 창의력이 부족한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yes 여야 획일적인 교육이 부족한 창의력의 원인인가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게임을 하던가, 인터넷 댓글놀이 등을 보면 수많은 창의력 대장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은 게임이나 놀이문화에만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이라 가능했던가?

한국인이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노벨상? 에플이난 구글같은 혁신 기업?

만일 내가 게임등에서 만난 창의력 대장들이 많다고 느꼈던 것이 (개인적인 편견이 아니라)사실이라면, 게임과 기업창업의 차이는 무엇일까?가 오히려 창의력 부족의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답을 먼저 기술하면, 게임은 실패를 수십번 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 창의력을 발휘한 이상한 상상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실전에서의 인생은 1번의 실패가 평생 실패가 된다는 사실이 창의력 부족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즉, 실패하면 안되는 사회에서 창의력은 무용하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의 창의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들이 창의력을 쓸 일이 없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그런 사회가 개인들에게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꾸짖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이대로인데, 한국인들이 모두 창의력 대장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창의력 대장들이 창의적인 사업 아이템을 바탕으로 하는 회사들을 많이 많이 만들어서 한국의 미래는 장미빛으로 빛나게 될까? 
내 생각은 '아니오'다.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창의력 대장들은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려워 현재의 삶을 욺켜쥐느라 바뻐서 자신에게 '창의력 대장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구글이나 애플의 창의력은 "한두 번 실패해도 재기가 가능한 사회"가 만드는 것이지,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사회를 사는 개인이 넘치는 창의력만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학교 선생님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데, 어느날 굉장히 좋은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고 하자. 바로 창업을 할 수 있겠는가? 아내와 자식이 있다면, 더더욱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새로운 길을 선택해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 TV에서 나온 자수성가한 사람의 실패담도 들을 수 있다. 첫 사업을 작게 시작해서 경험을 쌓은 후 등등과 같은 리스크를 관리하는 창업 노하우도 넘쳐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실패하면 x된다는 것을... 단순히 삶의 질이 좀 나빠지는 것이 아니고, 평생 자식들에게 한탄의 소리를 들으면 어렵게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면,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다 실패해도 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고, 좀 고생을 더할 수 있는 있지만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아니다"라고 느낄 수 있다고 하자. 내가 꼭 창의력 대장이 아니더라도, 어느날 우연히 떠오른 아이디어로 창의적인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창의적인 사회는 창의력이 풍부한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실패가 두렵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 부족 사회의 원인으로 교육을 지목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다시 한번, 한국교육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님)

그러면, 어떤 사회가 실패를 두렵지 않게 만드는 사회일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최소한의 복지'가 보장되는 사회이며, 최소한의 복지란 (의식주 + 의료, 교육)이다.

덧) 획일화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예외 상황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사람도 있고, 실패해도 문제가 안되는 잘 사는 사람도 있고, 실패해도 헤쳐나가는 능력있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지 않는 운좋은 사람도 있겠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실패에 대한 안전망이 없는 사회인가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안했습니다. 제가 듣고 보고 살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한 얘기니 근거자료는 허술하고요. (반대되는 논리나 통계자료를 들고 와서 반박해 주시면 좋습니다.)

by Jerry | 2015/02/14 13:40 | 트랙백 | 덧글(3)

Life of Pi - 신화와 인간

영화는 매우 잘 만들어졌다. 
소설로 이미 내용을 알고 있지만, 영화에 빠져드는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지고 들어간 음료수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영화가 끝난 후에야 음료수가 있었음을 깨닫았을 정도로 영화는 재미있었다.

이 영화/소설은 신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 작가는 이야기를 듣고나면 '신을 믿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주인공을 찾아간다.
주인공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속에서 신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태평양에서 겪었던 주인공의 두가지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와 신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작가는 첫번째 이야기(신화)가 더 좋다고 하고, 주인공이 감사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구원과 신화의 역할을 의미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신을 믿더라도 이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조언으로 자신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류는 신화의 세계에서 이성의 세계로 진보하였다. 
미래의 인류가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든다면, 그 것은 더 많은 인류가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된다면, 인류가 이성을 버리거나 버릴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종교란 절대적으로 불필요한 것일까?
파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성의 영역 밖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구원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신(기독교의 신일 필요는 없는)으로 포장된 이야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주인공은 사람을 먹고, 사람을 죽이고, 그 장소(벗어나고팠을)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리차드 파커는 야성인 동시에 신이었으며, 파이가 살아남은 이야기 모두가 신과 함께한 생활인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견딜 수 없는 영역의 삶은 곧 신화가 되었고, 그로인해 주인공은 인간의 삶의 영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찌보면, 매우 종교적인 이 영화/소설은 반대로 반 종교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 인간에게 신이 필요한 것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반대로 신이라는 것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니까.

by Jerry | 2012/12/24 12:58 | 트랙백 | 덧글(1)

미국과 한국의 자동차 문화 차이 - 오토바이

미국에서 보고 느낀 우리나라와 다른 자동차 문화 중 가장 큰 차이 2가지를 꼽는다면,
1. 보행자 우선
2. 오토바이 = 자동차
이다. (유럽의 자동차 문화는 또 다른 면이 있다고 들었지만, 직접 겪은 것이 아니니깐...)

보행자 우선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지만, 요즘 이글루스에 올라오는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 주행에 대한 글들을 보며 한국에서의 오토바이 운전 문화에 대한 내 생각을 한 번 써보도록 한다.
(나는 이륜차를 운전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부터 밝히고... 또, 미국이라고 모든 사람이 이렇고, 한국이라고 모든 사람이 저렇다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부 예외를 찾기가 힘들 정도의 경향을 관찰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바라보는 시각의 가장 큰 차이는 오토바이를 자동차로 보는가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고속도로에서의 주행같은 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라이더 스스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얘기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8년 가까이 운전하면서 본 무수히 많은 라이더들은 모두 차선을 지키며 자동차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전을 했다.
즉, 차선과 차선 사이에서 운전을 하며, 앞 자동차와 차간 간격을 유지하며, 앞 차가 멈추면 뒤에서 멈춰서 길이 풀리길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앞 문장은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당연한 내용이지만, 그 당연한 내용을 미국에서 본 많은 라이더들은 그대로 지켜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당당히 하나의 자동차처럼 운전하던 많은 라이더들이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고 갓길로 몰고 가는 모습 역시 미국에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유투브로는 차사이로 라이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내 눈으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국에 돌아온 후, 대략 5년의 시간 속에서 서울 도로에서 혹은 국도 상에서 만난 오토바이들 중에 자동차처럼 운전하는 모습을 보인 경우는 단 1번도 없었다. 유사한 경우는 1번 있었지만, 신기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자니 정체가 길어지자 결국 차 사이로 빠져나가더라...
즉, 한국에서 오토바이를 일반 자동차처럼 운전하는 라이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자동차와 다른... 한국의 오토바이는 한국의 라이더들만의 독립된 방식으로 운전하고 있다. 

이 글을 보는 라이더 중에, 차 사이로 빠져 나가거나 갓길 주행을 한 번도 안한 사람이 있을까?
일반 자동차 운전자 중에 빈 틈이 있다고, 차와 차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던가, 갓길 운행을 하지 않는 자동차 운전자도 종종 있지만, 그렇지 않은 운전자가 나를 포함해서 훨씬 더 많다고 장담한다.
즉, 일반인들이 라이더를 다르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라이더들 스스로 자신들을 자동차운전자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자동차의 운행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배달이나 택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당장 바뀌긴 어렵겠지만, 일반 오토바이 라이더들이라도 정상적인 운전을 하는 문화가 생기길 바란다.


덧)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 운행을 허용하는 것에는 찬성이다. 국도는 되고, 고속도로는 안되는 기준이 좀 이해하기 힘들다. 안전이 이유라면,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운전할 때 뭔가 고속도로를 금지하는 것을 설득할 수 있을만큼 두드러지게 더 안전하다는 것이어야 할텐데... 그럴리가??? 게다가, 자동차도 국도에서 사망율이 고속도로보다 낮을텐데, 이렇다고 자동차도 모두 국도로 가야하는 것도 아니잖는가. 물론, 스쿠터같은 것도 허용할 수는 없을테니 적절한 최소한의 조건(배기량같은 것?)만 정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by Jerry | 2012/05/28 15:18 | 삶은 달걀 | 트랙백(1) | 덧글(4)

오랜만...

이글루를 방치한 지 벌써 2년이 넘네...
쓰고 싶은 글들이 몇가지 있었지만, 시간 내기가 만만치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글을 안쓰게 되었네.
회사일이 바쁘기도 하고,
아내에게도 부족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하더라도
만화보는 시간만 줄여도 뭔가 이 것 저 것 할 시간은 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지
독서도 잘 못하고
글쓰기도 못하고 있네.
올 해는 좀 더 바쁠 것 같은데... 쩝

by Jerry | 2012/03/31 21:41 | 삶은 달걀 | 트랙백 | 덧글(0)

Venus Williams

정확한 연도는 뚜렸하지 않지만, 90년대 말에 그녀를 처음 보았다.
십대 바람이 불던 그 당시에는 알프스 소녀라는 힝기스와 셀레스가 주름을 잡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누가 먼저 이름을 알렸는지는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처음 본 그날부터 그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 스포츠 선수 중에 하나다.
수줍게 웃는 모습은 너무나 예쁘고,
자신이 직접 만든 드레스는 우아하다.
그녀의 다리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런 그녀가 부상으로 침체기에 있기도 하고, 한 때는 자신의 옷가게도 내고 디자인 공부한다고 테니스에 멀어진 것 같은 기간도 있었고. (원피스의 여자 테니스 복을 처음 입고 나온 것이 그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이번 호주 오픈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아마도 4강에 진출했다고 해도 동생인 서리나를 이기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을 응원하기에,
종종 인터넷에서
그녀를 짐승이라는 둥,
그녀가 패인 옷을 입고 경기에 나온 모습이 고개를 돌리게 한다는 둥의 글이 올라오면 화가 난다.

그녀가 앞으로도 몇 년간 더 멋있는 경기를 펼쳐 보인 후, 우아하게 은퇴하기를 바란다.

by Jerry | 2010/01/29 18:55 | 삶은 달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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